29 다음 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다가오시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30 내가 전에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선 것은 그분이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분이 바로 이분이십니다.
이튿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온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다녀간 다음날이다. 세례요한의 사역을 방해하고 견제하는 엉뚱한 사람들이 가고, 그 다음날 사역의 전부인, 그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찾아오신 것이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에게 나아오시는 모습을 보며, “보라!”라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예수님을 만난 세례요한은 큰 감동에 사로 잡혔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31 나도 이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까닭은 바로 이분을 이스라엘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32 그리고 요한은 또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나는 성령이 하늘에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그분 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습니다.
33 나도 이분이 그분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분이 ‘어떤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와 머무는 것을 네가 보게 되면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줄 분임을 알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34 그런데 나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이어서, 그간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쏟아놓는 것 같다.
“내가 전에 말했던, 나보다 뒤에 오시지만 먼저 계셨던 분이 바로 이 예수님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 분을 잘 몰랐지만, 내가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이 예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성령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봤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알려주신 일이기에, 이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증언한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현실이 되는 것을 경험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그 모든 말씀의 결정체, 하나님의 실체인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35 다음 날 요한은 자기 두 제자와 함께 다시 그곳에 서 있다가
36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37 그 말을 듣고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또 그 다음날 세례요한은 자신과 함께 있는 두 제자, 안드레와 사도요한에게 예수님을 소개한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그 말을 알아들은 두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 세례요한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제자도 예수님께 드리길 원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두 제자를 받아주셨다.
38 예수께서 뒤를 돌아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그들이 말했습니다. “랍비여,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랍비’는 ‘선생’이라는 뜻입니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와서 보라.” 그래서 두 제자는 가서 그분이 계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지냈습니다. 때는 오후 4시쯤이었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기로 결심한 두 제자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이말은 바꿔말하면, “무엇을 위해 나의 제자가 되려느냐?”는 뜻이다.
우리는 왜 예수님의 제자가 되야 하는가? 뭘 위해서 제자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
이 질문에 안드레와 요한은 “랍비여,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라고 말한다. 그냥 읽으면 무슨 뜻인가 싶은데, 이 말은 말 그대로 ‘선생님께서 계신 곳으로 우리가 가겠다’는 뜻이다. 즉,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겠다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즉, 겸손하게 가르침을 받겠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와서 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과 동일하다. 다시말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을 삶으로 보여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삶이며, 동시에 우리가 적용해야 하는 가르침인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다. 가르침을 배워서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간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였습니다.
41 안드레는 가장 먼저 자기 형 시몬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메시아는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42 그리고 그는 시몬을 예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께서 시몬을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이제 너는 게바라고 불릴 것이다.” (‘게바’는 ‘베드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또 그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의 공동체, 교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나는 세례요한처럼 나의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드렸는가? 아니, 예수님이 나의 전부인가?
이미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인데도, 다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딸 예주도 이미 주님의 것이다. 이름처럼 ‘예주’는 ‘예수님이 주인’되신다. 그리고 그렇게 예주는 하나님 품에서 바르게 자라날 것을 믿는다.
또, 나는 예수님의 제자인가?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너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니?”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묻고 계신다. 하나님의 뜻만을 행하며, 먼저 순종의 삶을 살아가신 예수님께서, 그 순종의 그 길을 걷고 있냐고 물으시는 것이다.
우리는 직장에서, 교회에서, (성경공부) 모임에서, 가정에서… 매순간 예수님을 따라, 그 제자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미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주셨고, 우리를 제자 삼아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도’라는 새 이름을, 새로운 삶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안드레와 같이 우리의 가족, 친구, 이웃에게 주님을 전해야 한다. 이는 먼저 사랑받은 자의 당연한 반응이며,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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