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 1~9절
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71명만 있는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다. 율법학자로 민사소송이나 형사소송 등 재판에 참여하여 (함께 혹은 단독으로) 판결할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었다.
그런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갔다.
오랜 시간 공부하고 인정받는 율법학자이며, 동시에 판결을 내릴 권한이 있는 사람으로서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 들킬까 봐 두려워서였는지, 혹은 분주한 낮 시간을 피해 예수님과 편하게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인지, 그것도 아니면 밤늦게까지 연구하고 토론하던 랍비들의 습관을 따라 밤에 예수님을 찾아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밤’은, 악과 거짓, 무지의 실재로써 상징되고 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으니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표적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온 선지자 혹은 메시야로 알았다. 니고데모는 왜 예수님을 찾아온 것일까? 니고데모의 질문이 없었음에도 주님은 니고데모의 마음을 아시고 답변해 주신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지(혹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지 – 5절) 궁금했던 것이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니고데모가 질문했다.
“사람이 어떻게 거듭, 다시 또 태어날 수 있습니까? 어머니 배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나올 수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다시 한번 강조하여, 진실로 진실로 그렇다며 말씀하신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이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
여기서 ‘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째는 양수를 이야기해서, 자연적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한 번 태어난 사람이 성령으로 한 번 더 태어나야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세례요한의 회개의 세례이다. 세례요한의 말처럼 성령으로 세례 받을 것을 준비하는 세례인 것이다. 누구든지 회개해야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세 번째로는 기독교의 세례다. 이것은 성령세례에 대한 공적인 선포로써, 이제 성령세례를 받아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사람들에게, 그 세례 받는 자신에게 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물을 이야기 하신 것은 어쨌든 성령에 대한 부가적인 이야기이기에 성령으로 거듭나는 뜻에는 변함이 없다.
*거듭난다는 말도 ‘다시 태어나다’, ‘두 번 태어나다’, ‘위로부터(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다’라는 뜻이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땅에 속한 것, 곧 없어질 것은 육신일 뿐이라고 하시며,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영원한 것, 그 영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이는 단지 육신과 영혼을 분리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 인간의 본성, 죄악 등 없어질 것과 그것보다 높은 차원의 없어지지 않는 것들을 분리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인간은 영원한 존재로써 결국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거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육신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거듭난 사람의 마지막에는 신령한 육신으로 변화되어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즉, 거듭나는 것은 이 땅의 흙으로 돌아갈 육신이 아니라 없어지지 않는 영혼 – 과 변화되는 신령한 육신 등 – 을 이야기한 것이다.)
“바람이 있지만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도 그렇단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서 사라지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바람이 만드는 결과를 통해 바람의 존재를 알 수 있다. 바람을 통해 날리는 민들레 꽃씨처럼 우리는 바람이 부는, 그 결과를 보고 바람을 아는 것이다.
성령도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성령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이 역사하여 거듭나게 한 사람을 통해 성령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거듭나서, 변화되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을 보고 어찌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설명으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도, 오랜 시간 연구했어도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계시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복음을, 하나님을 설명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도 자기가 깨달은 은혜를 알기를 원한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처럼 지식을 겸비하고 거기다 겸손히 이야기를 듣는 자세를 가지고도(게다가 설명하시는 분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신데도) 하나님을, 성령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지식의 한계이다. 너무나 명백해 보여도 복음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만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경험하면 설명되지 않아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이다.
복음의 비밀을 아는 자로써 우리의 할 일은 단지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뿐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니고데모가 말한 것처럼 다시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나올 수는 없지만, 그것과 같은 의미로 완전히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전의 내 삶과 내가 가지고 있는 성향과 기질을 뛰어넘어 오로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그렇게 새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인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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