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9장 16~21절

여호수아 9장 16~21절
16 기브온 사람들과 조약을 맺은 지 3일 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이웃이며 그들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17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길을 떠나 3일 길을 가서 기브온 사람들의 성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의 성은 기브온, 그비라, 브에롯, 기럇 여아림이었습니다.

조약을 맺은 후 상대 국가를 방문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고, 또 기브온 성 등이 가나안 정복에 포함되었기에 기브온 사람들의 거짓말은 바로 드러나게 되었다. (히위 족속은 본문처럼 4개의 성을 갖고 있었고, 특히 기브온 성의 사람들이기에 기브온 사람이라고 칭한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약 500년 전에 야곱의 아들들이 먼저 히위 사람들을 속인 일이 있다. 시므온과 레위가 하나님께서 주신 ‘할례’를 이용해 동생 디나의 복수를 한 사건이다. 어쩌면 그 일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18 그러나 회중의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두고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온 회중이 지도자들을 원망했습니다.
19 그러자 모든 지도자들이 온 회중에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두고 그들에게 맹세했으므로 그들을 칠 수 없다.
20 우리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그 맹세 때문에 우리에게 저주가 임하지 않도록 그들을 살려 주는 것이다.”
21 지도자들이 이어 말했습니다. “그들을 살려 두어 온 회중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 긷는 자로 삼으라.” 이렇게 해서 지도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아무리 속았다고 해도 약속을 파기할 수 없는 것은, 이유를 떠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약속이 파기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브온 사람들을 종으로 부리는 것으로 결정한다. 이 상황에 어쩔 수 없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22 그때 여호수아가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너희는 우리 가까이 살면서 왜 ‘우리는 당신들과 멀리 떨어져 삽니다’라며 우리를 속였느냐?
23 너희는 이제 저주 아래 있게 됐다. 너희는 영원히 종살이를 면하지 못할 것이니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해 나무 패며 물 긷는 자들이 될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 결정이 기브온 사람들의 거짓말로 인한 것임을 확실하게 밝힌다. 그리고 더불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게 됐음을 말한다. 참고로 성막의 잡무, 힘든 일은 가장 비천한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신 29:11).

24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령해 당신들에게 온 땅을 주고 당신들 앞에서 그 땅에 살던 사람들 모두를 진멸시키라고 하셨다는 것을 당신의 종들이 분명히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들 때문에 생명에 두려움을 느끼고 이런 일을 했습니다.
25 보십시오. 우리는 이제 당신들 손에 있으니 무엇이든 당신들이 보기에 선하고 옳은 대로 하십시오.”

기브온 사람의 해명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사람들을 진멸하도록 하셨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거짓말은 (다른 의도는 없는) 자신들이 살기 위한 일이었음을 밝히고 종살이의 처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26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그대로 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했으며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27 그날에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온 회중을 위해, 또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여호와의 제단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이 오늘날까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남았다. 비록 힘든 일을 하는 종의 신분이 되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이요, 축복이다.

[시 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기브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살게 되었다. 멸망할 수밖에 없던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여담으로 여호수아가 기브온 사람들에게 성전 일을 맡긴 것은, 그들의 가장 큰 죄악인 우상숭배를 버리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숭배의 문화가 전파되는 것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기브온 사람들의 저주는 레위의 저주를 떠오르게 한다(사건의 배경도 동일하다). 레위도 저주를 받아 한 지파를 이루지 못하고 흩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저주를 가장한 하나님의 축복이다.

비록 각 지파의 결정에는 끼지 못했지만(가나안 1차 정탐꾼 사건에도 12지파의 대표 12명만 뽑았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들어간 가나안 땅에 광야 1세대 레위인들이 들어갔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또한 (레위 지파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금송아지 사건과 관련 있지만) 어쨌든 레위지파는 제사장 지파로 하나님께 더 복된 일을 감당하게 되었다.

기브온 사람들도 그들의 악한 지혜로 힘든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것 역시 가나안 땅의 저주에서 벗어나 선하게 살게 된 축복이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우리의 삶도, 우리 자신의 (그것도 악한) 결정으로 암담한 결과를 맞곤 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우리를 죄악의 땅에서 옮기시는 구원의 길일 수 있다.

또한 가나안 주민과 같이 악한 곳, 죄인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은 열려 있다. 우리 역시 이방인으로 구원을 얻지 않았는가?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열려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누구든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심을 기억하여, 과거가 어쨌든, 태생이 어떻든 간에 기회가 닿는 대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것이 구원받은 우리가 할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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